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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제2회>

다시 통일농업을 생각한다

이병호 사장님.JPG

 

 

 

 

 

이병호 국민농업포럼 이사 (전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사장)

 

 

 

2. 화해시기 10년의 남북 농업협력

2000년 6.15선언 이후 통일농수산이 북한의 협동농장과 교류를 시작할 당시 북한의 협동농장들은 쌀의 경우 ha당 약 2.5∼3톤 정도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이기도 했고 FAO나 WFP가 확인하는 내용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실제로 우리가 금강산 삼일포나 개성의 송도리의 논밭에서 농업협력을 진행하면서 확인한 추정 수확량은 이에 훨씬 못미치는 2톤 정도에 불과했다. 남한의 평균 생산량 5톤과 비교해서 그 절반도 안되는 낮은 생산성에 우선 놀랐고. 남북간 기술 협력이랄 것도 없는 충분한 시비만으로도 단박에 4톤 정도까지 수확량이 증대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남북 농업협력 현장에서 이처럼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북한 농업의 현실을

자주 만나게 되는 데, 예를 들자면 현재 북한의 농지면적이 남한과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 북한의 협동농장들에는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하고 현장능력도 갖춘 유능한 농업전문가들이 다수 배치되어 있다는 사실, 70년대 초반까지는 대부분 작목에서 북한의 농업 생산성이 남한보다 높았고 1인당 GDP 또한 남한을 상당히 앞설 만큼 공업화가 진전되어 현재 북한 농촌인구가 35%에 불과하다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부족한 농촌 인력을 메우기 위해 70년대 초반에 이미 트랙터가 북한의 모든 농촌에 보급될 만큼 농업의 기계화가 진전되었고, 이 시기에 이미 전체 농지에 대한 경지 정리는 물론 모든 논밭에 물길이 닿도록 하는 관배수 시설을 완료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더 이상 농업용으로 작동하지 않는 버려진 트랙터나, 농지라고 말하기 어려

울 정도로 산성화되어 PH가 4-5 정도로까지 황폐화된 논밭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용수관로의 흔적 속에서 한때 남한보다도 생산성이 높았다는 과거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 걸쳐 사회주의권 경제협력체제가 약화되고 와해되는 과정에서 북한경제도 심각한 타격을 받았고, 농업에 대한 투자가 소홀한 기간에 복구할 틈 없이 겹쳐서 찾아온 태풍과 홍수의 결과라고는 하지만 어떤 국가든 농업기반이 한번 파괴되면 그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지 그리고 그것의 복구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2000년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민화협,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남북농발협, 월드비젼, 굿네이버스 등의 주요 민간단체들이 남북 농업협력에 힘을 기울인다. 무균 씨감자 사업, 당곡리 협동농장 협력사업, 구빈리 협동농장 협력사업 등의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이룩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50년만의 정상회담으로 물꼬가 트이긴 했지만 불안정한 초기의 남북관계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 매우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었으나 농업기반의 복구와 식량문제의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무엇인가 전략적 완결성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 평양을 중심으로 일시적 일회적 또는 일정 지역에 한정된 단위사업의 성격에 정치군사적 긴장해소와 화해협력의 촉매적 역할이 컸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업계에서는 부분적이고 일회적인 접근이 아닌 북한의 농업기반회복과 식량문제 해결을 위한 전체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 이후 농업생산력이 복구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 긴급 식량지원과 더불어 근본적으로는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적 협력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하고 통일농수산사업단을 결성하게 된다.

통일농수산사업단이 출범과 함께 정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토양, 용수, 경지, 자재 등 북한의 농업기반은 심각하게 파괴되어 있고 생산성은 극도로 낮다

2.북한의 자체적 노력만으로 이러한 기반을 단기간에 극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3.한국과 국제 사회의 식량과 비료 지원이 인도적 차원에서 요긴한 일이긴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4.남한 당국이 관심을 갖고 남한의 자본과 기술이 협력하면 북한은 농업기반 회복을 통해 만성적인 식량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5.남북한 당국 모두 농업협력에 나설 동기와 그 결과로 얻을 이익이 충분하고 남한의 자본 또한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6.필요한 것은 이러한 본격 협력에 대비한 경험의 축적, 선행 사례와 성공 가능성을 쌓아가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남북 당국이 주도하는 본격적인 농업협력 시대가 도래할 것에 대한 확신 속에 그에 대비한 개발협력 방식의 남북 농업협력 시범사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가장 먼저 시범사업을 시작한 곳은 금강산 관광특구의 배후지인 삼일포 협동농장이었다. 우리가 협력 지역을 당시 북한이 주로 요구하던 평양이 아닌 금강산 관광특구의 배후지로 선정한 것은 평양이라는 상징성보다는 시범사업의 실질적 성과를 위해서였다. 농업협력의 실질적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농업분야 전문가들의 방북과 물자의 원활한 조달이 필수적인데, 평양의 경우 방북을 위해서는 주당 2회 밖에 없는 심양이나 베이징을 경유하는 고려항공을 이용해야 했고, 물자 또한 배편으로 오랜 시간 남포항까지 가고 거기서 다시 농장까지 이동해야하는 비용과 시간 모두에서 번거로움이 컸다. 반면 금강산 배후지 농장의 경우 언제든 적은 비용으로 방북이 가능하고 물자 또한 육로로 농장에서 받을 수 있어 시간 비용 모두에서 유리하였다.

 

통일부와 대개의 윤곽을 먼저 협의하고 북한측과 만나 그 범위 내에서 가능한 협력의 원칙과 내용을 확인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협동농장에 대한 남북공동영농협력사업의 기본 합의서를 작성했고 시기별로 사업별로 여러 개의 부속합의서를 따로 작성했다. 모든 합의서는 사전 또는 사후 통일부의 승인을 받아야 효력이 발생한다.

농업협력 시범사업의 특성상 1년에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에 협동농장 협력사업은 3년 단위의 사업으로 진행한다는 우리의 생각에 남북 당국이 동의했고, 식량생산 증대, 영농기반 강화, 기술교류 및 인적교류, 농장 소득원개발 등으로 구성된 삼일포 협동농장의 시범사업은 최초의 시범사업으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삼일포의 성과와 경험을 기초로 2005년부터는 금강산 지역 9개 협동농장으로 시범사업이 확대되었고, 2007년부터는 개성지역으로까지 공동영농사업을 확장하였다.

개성지역에서는 개성공업특별지구 배후지인 송도리 협동농장을 선정하여 금강산 삼일포 사업을 모델로 협력사업을 진행하였는데, 금강산지역보다 사업의 진행속도가 훨씬 빨랐으나 남북관계의 단절로 남북 농업협력사업도 중단되어 2008년 초반까지만 사업을 시행하고 끝까지 마무리 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단되고 말았다.

당초 우리는 아무리 이명박 정부로 바뀌더라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2008년 봄에 평양에 다녀온 이후,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사망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그 여파로 금강산지역 공동영농사업은 물론 개성지역 협력사업도 중단되고 말았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3. 왜 협동농장인가?

북한은 협동농장이 농업생산의 기본단위이기 때문에 협동농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이 곧 북한의 농업생산성을 높이는 일이다. 북한에는 약 3000여개의 협동농장이 있고 지역에 따라 규모의 차이가 있지만 대개 인구 2-3천명에 경지면적은 5-600정보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협동농장에는 관리위원장 외에 농업기술을 관장하는 책임자가 있는 데 대개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장 경험도 많아 유능하기도 하고 농업생산을 높이려는 열의도 대단하다. 우리는 남북 농업 협력 시범사업을 통해 협동농장에 대한 성공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것을 통해

남북농업개발협력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때에 대비한 경험을 축적하고 선행지표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금강산과 개성을 남북 농업협력의 동서 거점지역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처음 금강산 배후지역의 삼일포협동농장 사업을 시작할 때, 남북간 서로의 불신이 컸다.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해소되고 신뢰가 쌓여갔다. 그러던 중 남북교류 중단으로 10년 동안 쌓아온 노력과 성과들이 다 무너져 앞으로 교류가 재개되더라도 새롭게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남북 농업협력사업을 통해 통일농수산사업단이 얻게 된 또 다른 성과는 남한 농업계의 여러 분야와 협력하고 통일농업의 네트워크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남북농업협력에 대해서 관심과 이해관계를 함께한 단체들(농업기관, 농민단체, 농기업, 품목별 생산조직 등)이 다양한 기술과 지식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재능기부 의 형태로 제공하면서 참여하였다. 또한 도드람양돈조합과 같은 많은 사업체가 자기의 재원을 투입하면서 참여하기도 했다. 실제로 통일부가 부담했던 재원에 비해 사업에 참여한 다양한 단체와 사업체, 조직 등에서 함께 마련한 재원이 훨씬 더 많았다. 통일농수산사업단의 운영진들은 농업 각 분야별 전문성을 모두 갖추고 있지는 않았지만 남한 내에 있는 각 분야별 전문 인력이 참여하여 많은 기술과 경험을 제공해 주었다. 농촌진흥청, 한국농어촌공사, 작물시험장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국제종합기계와 세실, 태광농자재 등과 같은 민간기업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공동영농사업에 참여한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대북 관련 사업의 기회를 모색하는 차원도 있었고,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가치에 동참하고 기여하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차원도 있었다.

 

4. 공동영농사업으로 무엇을 했나

협동농장 공동영농협력사업은 식량생산 증대, 영농기반 강화, 기술교류 및 인적교류 확대, 농장 소득원개발 등의 내용으로 추진되었다. 식량생산 증대 분야는 주로 농촌진흥청이 수행했는데 벼 생산성 증대와 두벌농사 확대를 위해 남쪽의 우수한 벼와 보리 품종을 가져가서 시범재배 후 확대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시범사업을 통해 금강산지역의 수도작 생산성이 정보당 약 2톤이던 것을 약 4톤 정도까지 증대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농촌진흥청과 북측 관리위원회는 수량조사를 위한 시료채취작업과 분석도 함께 했다.

 

밭작물 관련해서는 거의 모든 품목을 다 시험재배하였다. 또한 감자와 고구마의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 비닐 멀칭 시범재배 사업도 진행되었다. 멀칭작업은 환경적으로 좋지 않다는 견해도 있었지만 북한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다수확 농업이었고 북측의 강한 요구에 의해 그대로 추진되었다.

 

두벌농사 면적확대를 위한 시범사업도 진행했다. 두벌농사가 가능하려면 품종도 중요하지만 기계화가 되지 않고서는 품종이 좋아도 소용없는 일이 된다. 일조량이 적은 북한에서 두벌농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전작기의 수확과 후작기의 이앙을 단시간 안에 마쳐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두벌농사는 농기계 지원과 동시에 진행될 수밖에 없는 사업이다.

농업기계화 협력과 관련하여 우리는 남한에서 지원된 농기계들이 사용법 미숙과 부품 조달 문제, 연료와 오일의 부족 등의 이유로 대부분 1-2년 안에 멈춰 서있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기계를 지원하는 것 못지않게 농기계 사용법을 교육하고 스스로 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주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이유로 (주)국제농기계는 금강산 온정리에 농기계수리센터를 건설하고 필요 부품을 제 때 공급하면서 농기계수리 및 관리 전문인력 육성에 힘을 쏟았다. 농번기와 수확 후 농기계의 주요 점검시기가 되면 일제 점검을 해야 하는데, 북한의 고성군 내에 퍼져있는 농기계를 한 곳으로 모으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이런 시기에는 이동형 농기계 수리차량을 가지고 올라가서 북한 고성지역 곳곳을 다니면서 농기계를 수리점검을 해주고 교육도 함께 진행했고 나중에는 온정리 농기계수리센터에서 양성된 북한의 기술자들이 자체적으로, 일상적으로 농기계를 수리하고 정비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되었다.

 

산성화된 북한 토양개선을 위해 유기질 비료의 공급도 중요한 사업이다. 유기질 비료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도록 만들기 위해 기존에 있던 미생물 액비공장을 정상적으로 가동하도록 지원했다. 이 사업은 ‘흙살림’이 참여하여 많은 기여를 했다. 그리고 북한에 화학퇴비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북한의 토양이 심하게 산성화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여 우리가 하고 있는 공동영농사업 농장들부터라도 유기질 퇴비를 쓰자고 먼저 제안하였다. 그러나 북한측은 유기질 비료가 소똥, 돼지똥이라는 인식 때문에 도저히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참으로 어려운 협상과 설득 끝에 반입 전량을 전수검사하기로 하고 남한의 유기질 비료가 처음으로 북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없어서 못쓸 만큼 환영을 받았지만 처음에는 축분의 깔짚으로 쓰인 신문지 조각 일부 때문에 전량을 남쪽으로 다시 싣고 내려오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그 밖에도 민관이 협력하여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였지만 협동농장 공동영농협력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우리가 마지막 단계에서 주력한 것이 협동농장 단위의 소득원개발이었다. 금강산지역에서는 3년 단위로 계획을 세워 협동농장을 추진했기 때문에 3년의 협력사업 기간이 끝나더라도 농업생산성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 협동농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금강산 특구와 연계하여 관광객들에게 식자재로 공급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했다. 또한 남한 관광객들에게 농산물을 선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협동농장선물세트’를 만들어 공급하는 등의 사업을 추진했다. 그 사업의 마지막 단계로 선물의 포장을 디자인하는 단계에서 남북관계가 단절된 일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다.

개성지역 또한 송도리협동농장 협력사업을 진행하면서 개성공단 노동자들을 위한 식재료가 서울에서 공급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고 처음부터 공단의 식자재 공급을 송도리 협동농장이 수행할 수 있도록 협력사업의 내용을 설계하였다.

 

 

<기획연재로 총 3회에 걸쳐 수록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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