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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국민농업포럼 

정기수 상임이사

 

 

2024년은 프랑스 농업회의소 설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24년 농업회의소법이 제정되고 전국의 농민 투표를 거쳐 1927년 설립되었다. 그 이전인 1854년에도 농업회의소법이 제정되었지만, 나폴레옹 3세의 반대로 시행되지는 못했다. 이제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시대의 미래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 프랑스 농업회의소 100주년 내용 보기)

 

현대 사회는 시민주권의 민주주의와 산업주도의 자본주의로 대표된다. 산업화와 개방화에 직면하여 자본가들의 상공회의소에 준하는 농업회의소 설립은 시대적 과제였을 것이다. 당시 프랑스 농민 지도자들은 방어조직으로 ‘농민단체’, 경제조직으로 ‘협동조합’, 사회보장으로 ‘농업공제’, 금융기능으로 ‘농업은행’ 그리고 대표조직으로 ‘농업회의소’ 등 5개 범주로 장기 재편전략을 구상하고 하나하나 실행했다(김수석, 2007).

 

현재 광역회의소 13개소, 지역회의소 88개소, 해외회의소 5개소가 운영되고 농민과 가족, 농민단체, 협동조합, 농업은행, 농업공제, 지주, 은퇴농 등 250만 선거인단이 참여하여 6년마다 대표를 선출한다. 농업회의소 정규직 직원이 8천명이 넘고, 한해 예산이 7억5천만유로(1조1천억원)에 달한다. 농업회의소를 ‘공공기관’이라고 부르고, 구성원들은 농민을 대표하는 ‘선출직 공무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법적 지위를 갖는 농민조직으로 유럽연합과 프랑스 정부의 농업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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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8일 국회 농해수위 상임위에서 ‘농어업회의소법’을 포함한 농업민생 4법에 대해 본회의 부의 요구안이 야당 단독으로 의결되었다. 21대 마지막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되길 강력히 소망한다. 절대 22대 국회로 넘길 일이 아니다. 19대 국회에서는 법안소위 문턱도 넘지 못했고, 20대는 농해수위 전체회의에 올라갔지만 법안소위로 다시 넘어오는 우여곡절 끝에 자동 폐기된바 있다. 모두 여․야가 함께 발의한 법안들이었다.

 

가끔 생각해 본다. 1998년 ‘농업농촌기본법’에 농어업회의소 근거 조항이 담기고, 그해 10월 무리해서라도 전국농어업회의소가 설립되었다면 농어민의 현실이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까? 역사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어찌 알겠는가. 그로부터 26년이 흘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일부 농어민단체의 반대 성명이 나왔다. 또 나올수도 있다. 정부의 움직임이 여러 경로로 확인된다. 예상했던 일이라 놀랍지도 않고 감흥도 없다. 농어민단체의 현실이 서글플 뿐이다. 간절함이 없으면 논리라도 잘 만들지라는 아쉬움도 있다. ‘옥상옥’ '관변단체' ‘농민단체 역할론’ 등 20년 넘게 같은 얘기다.

 

농어업회의소가 농어민단체인가? 상공회의소가 관변단체라는 주장인가? 프랑스 농민이 지금 100년 동안 관변단체 운영한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것인가? 농어민 공감대가 낮다면서 농어민단체 스스로 회원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라도 한 적이 있는가? 다른 국가의 농민과 타영역을 평가절하하며 자기모순적인 주장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현장 농어민은 설명을 들으면 바로 이해하는데, 정부와 중앙 농민단체만 이해를 못하고 있다. 귀와 눈을 막고 있으니 재차 당위성을 설명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1990년대 개방농정 체계 이후 많은 것이 변했지만 농어민단체의 기본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30년 동안 농어민이 줄고 농어민단체가 오히려 늘어난 정도가 변화라면 변화다. 반면에 정부의 권한과 조직은 계속 비대해 지고 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일부 농어민단체의 주장은 현재 체계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지금이 좋고 변화가 싫다’가 핵심이고 나머지는 사족일뿐이다. 대표조직 만드는 것도,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권한을 부여 받는 것도, 다른 단체와 섞여 회의하고 조정하는 것도 싫다는 얘기로 들린다. 지금처럼 정부․지자체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가끔 상경하여 집회하고 필요한 예산 확보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농어민단체의 헌신과 노력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청년들이 기존 농어민단체 가입을 왜 주저하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과거 30년 동안 치열했던 농권운동에 지쳤고, 이제 아스팔트 농사 지을 나이도 지났고 지역에 사람도 없다. 다양한 이해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선진국도 다 겪는 시대적 변화와 어려움이 왜 농어민의 책임이겠는가? 어떻게든 농어민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안주가 가장 나쁜 선택이 되곤 한다. 외부 환경은 변하고 우리를 계속 흔들어 댈 것이다. 나쁜 징후가 쌓이고 내부 균열이 지속되면 결정적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최근에 축산단체들이 축산 관련 예산이 줄어든다며 양곡관리법과 농안법 개정을 반대하는 불행한 사태까지 왔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사태에 어민단체가 정부를 대변하는 웃픈 현실도 보았다. 이런 일은 더욱 빈번할 수 있다. 이미 현장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농어업 내부를 뒤흔들어서는 안된다. 농어업계 내부 협치가 안되면서 정부에 아무리 수평적 협력관계를 얘기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반면 최근 프랑스와 일본의 사례는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올봄 격렬했던 프랑스 농민 시위가 끝나고 프랑스 농림부는 농민과 약속한 70가지 조치의 이행 결과를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다. 과격한 농민들이 두려워서 그럴까? 프랑스 정부가 농민과의 약속을 무겁게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농민의 정치적 힘이기도 하지만, 농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정부의 성의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일본의 정부와 농업회의소는 전국적으로 ‘목표지도’를 만들고 있다. 고령화로 농민이 줄고 유휴농지가 늘어나면서 마을과 시정촌 단위의 장기 농지 활용계획을 지도로 만드는 작업이다. 나이 지긋한 농민들이 지적도를 펼쳐 놓고 농지 필지별 조건과 상태, 후계농 확보 여부 등을 감안하여 반드시 보전할 농지와 그렇지 않은 지역을 구분하고 있다. 우리도 서둘러 이런 일을 해야 하는데 누가 할 수 있을까? 

 

농어업회의소가 분열된 농어민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을 수 있다면, 정부가 농어민의 주장을 무겁게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면, 현장 농어민과 함께 지역을 지키는 구체적인 일들을 할 수 있다면 충분한 존재가치가 있지 않을까?  

 

농어업회의소를 만든다고 산적한 농어업 문제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 스스로 뭐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현재 시범사업을 하는 대다수 농어업회의소의 고민이다. 현장 농어민에게 가까이 다가서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는 지역의 농어민단체, 농협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라도 해보자. 우리는 아직도 자동차 시동 꺼놓고, 움직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이 잘 되기만 바라고 있다. 더 이상 외부 입김에 갈라지고 분열되지 말고 현장 농어민을 중심에 놓고 협력과 연대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일본의 농어업회의소와 같은 위상을 확립하는데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아니면 실패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아마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이고, 수많은 고비를 넘나들 것이 분명하다.

 

정부와 여당은 더 이상 농어민단체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야당은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이 확인해 주듯 좌고우면하지 말고 농어업회의소법을 포함한 ‘농업민생 4법’을 5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제발 1998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는 말자. 대한민국 역사에 '농어민에게 두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농어업회의소 시범사업 14년 하고, 농어민단체 내부의 자중지란으로 두 번 모두 실패했다’라고 기록되는 것이 가장 두렵다. 치욕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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