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앞에서
⎯ 국민농업포럼 창립 10주년을 맞이하여
서정홍
밥을 먹는 것은
바람에 떨고 있는 작은 풀잎을 먹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작은 풀잎 위에 내린 달빛을 먹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달빛 아래 흐르는 개울물을 먹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개울물로 농사짓는 농부의 땀을 먹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농부의 땀 속에 들어 있는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은
그 마음속에 들어 있는 꿈을 함께 먹는 것입니다
이 밥을 먹어야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이 밥을 먹어야만
말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겠습니다
밥을 먹습니다.
나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고 싶어서
밥을 먹습니다
농부를 살리고 마을을 살리고 싶어서
밥을 먹습니다
약자를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고 싶어서
밥을 먹습니다
땅을 살리고 후손을 살리고 싶어서
고마운 마음으로
천천히 천천히 이 밥을 먹고,
생각과 삶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소박하고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내가 나를 섬기듯이
사람과 자연을 섬기며 살겠습니다